본문으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메뉴로 바로가기

건설뉴스

  • 등록일 2018-11-06
  • 담당부서
  • 조회수134
발주기관 ‘모르쇠’ 노골화 우려 속 “장기계속공사 퇴출” 목소리 높여

“1년 단위 계약 맺는 장기계속사업

재정 절감에만 급급한 기재부와

‘발주 우선주의’ 발주처의 합작품”

예산 확보 어려워 분쟁 불가피

工期 연장 따른 부작용도 속출

계속비공사 계약방식 확대해야


대법원의 ‘간접비 소송’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대형건설사를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가운데 건설현장에선 발주처의 ‘간접비 모르쇠’가 더욱 노골화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간접비 소송의 불씨가 된 ‘장기계속공사’를 줄이는 대신 전체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미리 정하는 ‘계속비공사’ 계약방식을 늘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20여개 대형건설사들은 지난달 30일 대법원의 공기(工期) 연장 간접비 소송 판결에 대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성토와 함께 이번 판결로 당장 건설현장에서 벌어질 간접비를 둘러싼 발주처들의 갑(甲)질에 대한 우려와 탄식이 쏟아졌다.

◇현실 외면한 판결…발주처 ‘간접비 甲질’ 노골화

대법원은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선 건설공사를 맡은 대림산업 등 12개사가 국가와 서울시를 상대로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 공사비용(간접비) 140여억원을 보상해달라’며 낸 상고심에서 1ㆍ2심 판결을 뒤집고 ‘간접비 지급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사 관계자는 “일을 시킨 만큼 대가를 주는 것이 상식인데, 모범을 보여야 할 국가와 공기업이 이를 오랫동안 무시해왔다”며 “더구나 기대했던 최고 권위의 대법원까지 진실을 외면하는 판결을 내려 이제는 하소연할 곳도 없다”고 토로했다.

B사 관계자는 “1심과 2심에서 ‘간접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자, 발주처들이 너도나도 ‘간접비 포기각서’를 요구해왔다”면서 “이제 대법원까지 간접비를 불인정했으니 대놓고 간접비를 못주겠다고 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은 ‘간접비 불인정’이라기보다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총괄계약 대신 1년 단위 차수별(연차별) 계약 때 간접비를 청구해서 받아내라는 취지다. 하지만 입찰 때 공고된 총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총괄계약으로 인식해 온 건설사들로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총괄계약을 근거로 입찰에 참여했고, 이를 근거로 낙찰받은 뒤 차수별로 계약을 해온 관행과도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예산이 확보될 때마다 차수별 계약을 맺어야 하는 을(乙)의 처지인 건설사들에 매번 공기 연장 간접비를 청구하라는 것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C사 관계자는 “그동안 장기계속공사를 계속비공사로 일부 전환해주기도 했는데 이제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며 “차수별 공기 연장을 요청해도 수용하지 않는 발주처 관행과도 전혀 맞지 않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법원이 애초 집행 불가능한 ‘차수별 간접비 청구’를 근거로 총괄계약의 법적 효력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간접비 소송戰 부른 장기계속공사 퇴출해야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계약 구조상 간접비 분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장기계속공사 계약을 퇴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산이 확보될 때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장기계속공사와 달리 계속비공사 계약은 한번에 총액계약을 맺고, 전체 공사 기간도 ‘기본 5년 이내, 최대 10년 이내’로 정해져 있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장기계속계약 방식은 제때 예산 확보가 어려워 간접비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대한민국에만 있는 기형적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현재 건설사들의 장기계속공사 간접비 소송 현황을 보면, 32개 발주처를 상대로 모두 260건, 소송가액 1조2000여억원 규모다.

이런 장기계속공사는 공기 연장으로 인한 인프라 사업 지연과 공사비 급증, 이용자들의 불편을 키우고 있다.

실제 간접비 소송 중인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남광주, 소태, 남화 송전선로 지중화공사’는 당초 8개월이던 공사기간이 잦은 공기연장 탓에 11.6배인 93개월이 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용인구성지구 중로2-98호선 및 탄천 정비공사’도 공기가 10개월에서 69개월로 7배가량 급증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동남권 유통단지 기반시설 조성공사’도 24개월에서 101개월로 당초 공기보다 무려 55개월 늘었다.

<건설경제>가 국토교통부에 의뢰해 올해 완공 예정인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국지도) 등 총 49개 도로사업의 공사기간을 집계한 결과 평균 9.2년이었다. 이는 예산 투입기준으로, 실제 개통까지는 1∼2년 더 걸린다. 착공에서 준공까지 10년 이상 걸린 사업도 절반이 넘는 25개(51%)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재정당국과 발주처들은 장기계속계약 방식을 여전히 선호한다본지가 올해 일반국도 건설사업의 계약방식을 전수조사한 결과에서도 총 165건 가운데 80%인 132건이 장기계속계약이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장기계속공사는 당장 재정 지출만 최소화하려는 기획재정부와 ‘쪽지 예산’으로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국회, 일단 발주하고 보자는 발주처가 만든 합작품”이라고 꼬집었다.



김태형기자 k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