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 201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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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원가산정방식에도 지자체 여전히 삭감ㆍ홍보에만 열올려
계약심사 폐지ㆍVE 통합 운영 필요…삭감위주 인센티브제 개선도
국가계약제도 혁신방안이 추진되는 가운데도 지자체 등의 계약심사제도가 여전히 공사비 삭감 내지 예산절감 홍보수단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자재단가 합리적 적용, 주휴수당 반영, 원가계산 전문성 강화 등 공사비(예정가격) 산정방식 개선방안과 보조를 맞춰 계약심사제 개선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정부가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적정 공사비 보장을 골자로 하는 ‘국가계약제도 혁신방안’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일선 지자체들은 아직도 계약심사를 통한 예산절감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강원도는 지난해 계약심사를 통해 527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고 최근 밝혔다. 경북도도 최근 계약심사로 지난해만 521억원을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울산시의 경우에는 총 2300억원대 건설공사 계약에 대한 심사로만 138억원을 아꼈다고 밝혔다.
광역 시ㆍ도뿐 아니라 전남 진도군과 충남 태안군, 대전 대덕구, 서울 영등포구 등 기초자치단체와 교육청들도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 이상의 절감 실적을 홍보하고 있다.
계약심사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 용역, 물품 등에 대한 계약체결에 앞서 원가 및 설계내용 등을 심사하는 제도다. 예산낭비 요인을 제거 또는 개선해 재정 건전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 발주자의 계약심사는 공사비 등 계약금액 삭감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예산절감 내용만 보더라도, 합리적 대안이나 개선책보다는 대부분 삭감에만 치중돼 있다. 게다가 계약심사의 절차나 내용, 삭감 이유나 내역 등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는 원가(예정가격) 산정방식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는 중앙정부의 행보와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실제 최근 정부가 내놓은 국가계약제도 혁신방안은 무엇보다 공사비(예가) 적정성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량구매를 조건으로 결정된 관급자재 단가를 사급자재에 적용하지 못하게 하고, 예정가격에 근로자 주휴수당도 반영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원가계산용역기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용역기관 심사절차 및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한편 2020년 적정임금제 도입에 따른 인건비 인상분도 반영하도록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현행 공사비 산정방식이 적정 공사비를 반영하지 못해 혁신을 추진하고 나섰는데 발주자들의 계약심사 결과는 연이은 삭감으로만 점철돼 있다”면서 “이런 식의 계약심사 행태가 유지된다면, 혁신방안이 제대로 추진되더라도 적정 공사비 보장은 불가능하다”라고 토로했다.
업계 및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계약심사제를 폐지하거나, 유지한다면 심사내용 및 절차, 결과 등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 생애주기 적정성 검토(VE)와 통합 운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령과 규정이 정한 원가와 요율을 적용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예가를 산정했는데도, 발주자의 요구나 예산규모에 ‘끼워 맞추는’ 식으로 공사비 등을 삭감하는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일본에서도 발주자가 인위적으로 공사원가를 삭감하는 문제가 빚어진 바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지난 2014년 ‘공공공사의 품질확보 촉진법’을 개정해 적정 기준에 의해 산출한 공사원가를 인위적으로 삭감하거나 예정가격을 결정하는 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했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계약심사는 총액 측면에서 예가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원가산정의 명백한 오류나 실수를 바로잡는 역할에 한정하거나, 시공방법이나 사용자재의 적정성 등을 심사하는 설계경제성심사(VE)와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발주자는 계약심사를 통해 예산을 절감했다고 홍보하기에 앞서 부실공사의 우려는 없는지, 저가 하도급이나 부실자재가 사용될 우려는 없는지를 파악하는 게 본질”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또 발주자들이 계약심사를 공사비 삭감 도구로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각종 인센티브제도나 담당자에게 무리한 예산절감 방안을 요구하는 페널티 등도 폐지 또는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봉승권 기자